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글이지 싶다. 기본소득의 근거를 찾는 글인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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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향한 희망, 돈에 의한 공포

Hope and Fear



사람의 삶에는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요소들이 있는가 하면, 행운이든 불행이든 변하기 쉬운 요소들도 있다. 변하지 않는 요소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변하는 것들은 희망과 공포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한 사람의 감정적인 삶의 특징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 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의 감정이란 확실한 쪽보다는 의심스러운 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소득이 고정되어 있다면 돈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의 사회적 지위가 불변이라면 윗사람에게 아첨하는 속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자기 조국의 위대함이 확고하다고 믿는다면 맹렬한 국수주의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가치 집합을 살펴보자. 만약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구제 불능일 정도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면 지적 야망을 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자신에게 미적 감각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예술적 탁월함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자신이 구제 불능일 정도로 평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명성을 바라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 바깥의) 현대 세계에서는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평균적으로 과거 어느 시절보다 가변적이다. 누군가는 투기로 1년에 100만 달러를 벌었다가 다음 해에 그 돈 전부를 날릴 수도 있다. 그가 100만 달러를 소유하고 있을 때는 훌륭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지만 돈을 날리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서구 세계 전역에 걸쳐 대다수 사람들이 2년 전보다 지금 훨씬 더 가난하다. 반대로 경기가 좋은 시절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부유해진다.


이런 불확실성의 결과로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돈에 집착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집착이 소수 집단에 국한됐지만 지금은 거의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경제적 불확실성의 당연한 결과로서 사람은 이제 이 쟁탈전에서 거둔 성공에 비례하여 존경받게 됐다. 그 길에서 비켜서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존경받지도 못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까닭은 많은 돈보다 다른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소심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 사람들 대부분이, 금전적 성공이라는 이상을 젊은이들에게 제시한다. 젊은이들은 영화에서 사치에 관한 묘사들을 접하게 되는데, 영화에서는 갑부들이 대리석 홀이 있는 집에서 눈부신 드레스 차림의 아름다운 여성들을 거느리고 있기 마련이다. 주인공은 대개 끝에 가서 이 성공한 계층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심지어 예술가들조차도 그가 버는 돈의 양에 따라 평가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돈으로 특정할 수 없는 가치는 무시당하게 됐다. 이 투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모든 종류의 감수성을 실패의 증후로 여기는 것이다. 


100년 전에는 부자들이 교육과 문화 면에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렇지 못하면 존경도 받을 수 없었다. 오늘날에는 교육과 문화가 가난뱅이라고 무시당하는 교사와 교수들에 국한되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 체제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이러한 문명의 손실이 개선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일단은 이 손실을 실감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손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세계가 전적으로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근거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재정적인 지위를 잃는 일이 별로 없고 그 상태를 쉽게 개선할 수도 없는 세상에서는 돈보다는 다른 어떤 것의 가치가 더 무게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하는 금전욕을 줄이고자 한다면, 모두가 필요한 만큼 가지되 누구도 과하게 가지지는 않는 체제를 만드는 것으로 첫걸음을 떼야 할 것이다.(1931.10.7.)


Posted by 익은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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